캘리그래피는 서예에 뿌리를 두고 순수 미술의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고 그 순수성을 찾아가기 위해 열네 번째 개인전을 연 이상현 작가의 이번 전시는 그의 캘리그라퍼 인생 20주년을 기념한다. 이번에 발표한 신작들은 그가 걸어온 '길'에 대한 키워드를 작품으로 담아낸 것이다.
이상현 캘리그래피 작가
'진정한 서예가는 글씨를 잘 쓰는 것이 먼저가 아니다. 서예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먼저다' 은사님(유천 이동익)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점점 디지털 문화에 현대인들이 익숙해져갔던 1999년, 전통 서예문화는 현대인들과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이때 저는 서예문화의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고, 침체되어가는 전통 서예문화를 대중들에게 더욱 친숙하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故 김흥수 화백님을 생전에 만나 뵌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저에게 자네는 앞으로의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예술가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선생님께서는 "예술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질문에 저는 막연했습니다. 이후 선생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예술은 그 시대의 문화를 만들고 그리고 그 문화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예술가가 되는 것이다"라고... 그래서 저는 이후부터 캘리그래피 문화를 위해 더욱 많은 노력을 하게 되었습니다.
올해로 캘리그래피 작가의 길을 걸어온 지 20주년입니다. 그래서 그동안 다양하게 시도해온 대표작들과 신작을 전시하고 윤디자인그룹과 함께 20주년 기념 디지털 서체를 발표하였습니다. 대한민국 캘리그래피 문화를 이끌어온 20년간의 솔직 담백한 이야기를 담은 「붓을 잡은 연기자, 그에게서 읽는 열정의 힘」 에세이 책 출간을 기념하는 행사이기도 합니다.
한국 캘리그래피 문화 20주년은 아직 가야 할 길이 멉니다. 디자인 서예, 디지털 서예, 미디어 서예를 넘어 이제는 생활 서예, 공연 예술, 현대 서예 등 다양한 순수미술의 길에 올라섰습니다. 캘리그래피의 뿌리는 전통 서예입니다. 그러기에 지난 20년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비전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글씨는 곧 마음이고 예술입니다."
쉼, 54×78cm, 아트지, 아크릴, 색지, 2019
(좌측) 기쁨, 78×108cm, 아트지, 아크릴, 한지, 2019 / (우측) 소망, 54×78cm, 아트지, 아크릴, 색지, 2019
'씹으면 씹을수록 맛이 난다'라는 말이 있듯이 작품도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일시적인 자극이 아닌 보면 볼수록 친근해지고 생각나는 작품... 이런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화선지와 먹을 고집해왔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문자 추상의 현대적인 작업으로 캔버스, 아트지, 아크릴, 먹, 혼합재료를 이용해 다양한 기법과 재료를 사용한 작업들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전통과 현대의 만남! 현대인들과 예술품으로서 소통할 수 있는 작품들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한때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얻었습니다. 그들의 생각과 바램, 위로 등을 글로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작업들은 자연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15년 개인전 '바람의 시'에서는 바람의 소리를 듣고 자연의 소재로 사운드 드로잉 작품을 표현했었습니다. 이후 인간의 마음과 자연의 교감을 통해 작업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 중에서도 자연을 소재로 표현한 작품이 있을까요?
이 작품들의 드로잉 선은 서예용 붓이 아닙니다. 여기에 표현된 선들은 모두 자연의 선으로 나뭇가지를 가지고 표현한 거예요. 나무껍질, 두꺼운 가지, 마른 가지, 죽어 있는 지푸라기 잔풀, 풀 뭉치 등이 선의 요소로 사용되었습니다. '글씨'라는 작품으로 설명드리자면, 글씨는 '글의 씨앗'이라는 뜻이잖아요. 밭에 씨앗을 뿌리고 그것들이 싹을 틔워낼 수 있도록 자연의 소재를 가지고 드로잉하고, 찍어내면서 표현한 것입니다.
꽃씨, 64×93cm, 한지, 먹, 아크릴, 2019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의 소통입니다.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일들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아갈 수 있고, 그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해보고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을 좋아합니다.
늘 꿈을 꾸자! 진심을 다하고 간절함이 있다면, 그리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면 그 꿈은 꼭 이루어질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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