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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갤러리

[세미나 후기] 경계 너머의 ‘뉴 아이덴티티’ 탐색가, 뉴미디어아티스트 신기헌


어릴 적, 과학의 달을 맞아 학교 과제로 20년 후 미래를 그림으로 그렸던 기억이 난다. 당시로서는 참 엉뚱한 상상화였다. 어느덧 시간이 훌쩍 흘러 그때의 ‘미래’는 ‘현재’가 되어 있다. 놀랍게도 20년 전의 과학 상상화 중에는 ‘현실’이 된 경우도 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상상이 지식보다 더 중요하다(Imagination is more important than knowledge).”라는 말을 남겼다고 하는데, 정말로 ‘상상’이라는 것은 큰 힘을 지닌 듯하다. 그렇게 상상은 과학의 발전으로, 또는 사회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실현되기도 하니까.


스스로를 디자이너와 아티스트의 경계에 있다고 말하며, 그래서 ‘크리에이터’라고 자칭하는 뉴미디어아티스트 신기헌 역시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나가는 사람이다. 12월 19일 윤디자인연구소를 방문한 그는 ‘New Spectrum, New Platform, and New Media’라는 주제로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았다. 새로운 관점이 새로운 상상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현실화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


타이포그래피 계간지 <더 티(The T)>와 그래픽디자이너 강구룡이 매달 진행하는 ‘더 티 & 강쇼’ 세미나 신기헌 편 후기를 전해드린다.


 뉴미디어아티스트 신기헌




뉴미디어란 무엇인가



이날 세미나에서 신기헌은 ‘뉴 스펙트럼’과 ‘뉴 플랫폼’에 관해 설명하고, ‘뉴미디어’라는 재료에 익숙해짐으로써 얻을 수 있는 ‘전혀 새로운 정체성’을 이야기했다. 
뉴미디어는 하나의 분야라기보다 건축, 디자인, 사용자 경험(UX), 마케팅, 교육, 사회 혁신 등 다채로운 영역과 결합하여 여러 형태로 만들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따라서 다른 분야 혹은 타인과의 협업을 통해 전문성을 확장시킬 수 있다. 명료한 아이덴티티를 가질 것을 강조하는 세상과는 반대 방향으로, 뉴미디어를 다루는 신기헌은 자신만의 정체성 찾기에 대한 실험을 진행 중이라고. 


한 자리에만 머물러 있다면 뉴미디어는 ‘뉴’미디어가 아니다. 그래서 신기헌은 ‘낯설게 하기’를 통해 기존의 것과는 전혀 새로운 경이로움을 보여주고자 한다. 기술과 트렌드만을 좇다 보면 결국 경쟁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즉, 새로워질 수 없다. 누군가는 새로운 매체, 새로운 접근을 시도해야 한다. 신기헌은 그 일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하고 싶어 한다.




 

 

 

뉴미디어아티스트 신기헌의 작업들 / 출처: 신기헌 유튜브 채널





뉴미디어를 통해 찾아가는 뉴 아이덴티티



뉴미디어 콘텐츠를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다섯 단계로 나뉜다고 한다. 우선 ‘관심’을 갖고, ‘집중’하여 이해하려고 한다. 이 과정 속에서 기존의 생각들이 ‘해제’되고, 적극적으로 ‘반응’하여 자신의 것으로 ‘수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살면서 알게 모르게 지니게 되는 스펙트럼에는 양극단의 경계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현실’과 ‘가상’, ‘아날로그’와 ‘디지털’, ‘고정’과 ‘변화’처럼 말이다. 이 개념을 이해한다면, 양극단의 경계 사이에서 어떤 경험이든 가능하며 그 무엇에든 참여할 수 있다고 신기헌은 말한다. 또 그는 두 가지 방법을 통해 스펙트럼을 확장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첫째, 실험과 도전을 통해 양극단의 경계를 넓히기, 둘째, 작은 배움이나 짧은 경험 등을 통해 양극단의 경계 사이의 공극률(입자와 입자 사이에 있는 빈틈이 차지하는 비율, 간극률)을 높이기. 경계의 확장과 채움을 통해 스펙트럼의 해상력을 높이는 것이 관건이라는 뜻이다.


여러 분야에서 사용되는 ‘플랫폼’이라는 용어에 대해 신기헌은 자신만의 정의를 내리고 있다. 뉴미디어라는 요소(material)를 통해 다양한 스펙트럼의 영역이 하나로 연결되고, 규모나 형태에 관계없이 모두의 필요가 모이고 해결되는 곳이 바로 플랫폼이라는 것. 더 나아가 그는 개인이 플랫폼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앞으로는 이러한 역할이 점점 많아질 것이고, 그만큼 모두에게 가능성이 열려 있으며, 문화·교육·체험·제품·마케팅·콘텐츠·공간과 같은 플랫폼의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는 범위는 무궁무진하다고 신기헌은 강조한다.




신기헌 세미나 현장



각각의 개인이 플랫폼으로 기능할 수 있으려면 모두가 크리에이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신기헌의 생각이다. 크리에이터는 플랫폼이다! 새로운 요소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스펙트럼을 가진 플랫폼으로서의 크리에이터를 신기헌은 추구한다. 한 분야를 깊게 파는 ‘스페셜 리스트’를 강조하는 시점에서 다양한 사람 혹은 분야를 이어주는 중개자인 ‘미디에이터(Mediator)’, 수많은 기술을 연결해주는 ‘테크 큐레이터(Tech Curator)’, 대중성 확보라는 필요를 도출하기 위해 크리에이터를 설득하는 ‘매스 커뮤니케이터(Mass Communicator)’까지, 세 가지를 모두 충족할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Generalist)’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신기헌의 말대로, 다종다양한 분야에서 저마다의 스펙트럼과 양극단의 경계를 경험하고 있는 개개인 모두가 크리에이터가 된다면? 아마도 뉴미디어를 넘어 ‘뉴월드’가 만들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려면 우선, 기존의 규칙과 고정관념으로부터 탈피하여 ‘나’를 찾아야 할 것이다. 신기헌의 세미나는 이렇게 뉴미디어로부터 개인의 정체성 문제까지 아우르며 금요일 밤을 달뜨게 해주었더랬다.




▶ 뉴미디어아티스트 신기헌 인터뷰(타이포그래피서울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