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많은 분들이 문서 작성이나 각종 편집 작업 시 주로 선호하는 자기만의 한글 폰트를 갖고 있을 것이다. 디자인 관련 분야 종사자(혹은 관심이 있는 사람)라면 윤고딕과 윤명조를 자주 쓸 테고, 직장인이나 학생들처럼 일반적인 문서 작업이 잦은 이들은 데스크톱과 랩탑에 내장된 기본 서체를 이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영문의 경우는 어떨까? 디자이너들은 헬베티카(Helvetica)를 쓴다는 의견이 많고, 일반인들은 한글폰트와 마찬가지로 디폴트 폰트(default font)를 사용하는 경우가 대다수일 것이다. 컴퓨터에 기본적으로 설정된 영문 폰트가 에어리얼(Arial)이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사실은 잘 알지 못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헬베티카와 에어리얼은 사실 전문가가 아니라면 그 차이를 알아채지 못할 만큼 매우 비슷한 용모를 가졌다. 이 두 폰트로 쓴 똑같은 문장을 비교해놓고 어느 쪽이 헬베티카고 에어리얼인지 맞히는 퀴즈 사이트가 있을 정도다. 여러분도 직접 문제를 풀어보시기를. 아이폰 유저라면 ‘Helvetica vs. Arial’이라는 앱을 통해 둘을 가려내는 퀴즈 게임을 즐길 수 있다.(본인의 눈썰미와 폰트 지식을 시험해볼 기회가 아닐는지!)
닮은 듯 다른, 다른 듯 닮은 헬베티카와 에어리얼 구분하기 퀴즈(바로 가기)
▶ 애플 앱스토어에서 무료 내려받기 가능한 Helvetica vs. Arial
대체 헬베티카와 에어리얼은 어떤 폰트이고, 얼마나 비슷하길래 위와 같은 사이트와 앱까지 만들어진 걸까? 먼저 헬베티카에 대해 알아보자.
헬베티카는 1957년 스위스 하스(Hass)사의 막스 미딩거(Max Miedinger, 1910~1980)가 개발한 서체다. ‘헬베티카’라는 이름은 ‘스위스(Switzerland)’의 라틴어 표현―‘스위스인(Swiss)’을 뜻하는 라틴어는 ‘헬베티아(Helvetia)’ ―이다. 서체명에서부터 스위스 모더니즘이 짙게 배어난다.
약 60년 된 이 서체는 오늘날 거리의 간판, 지하철역 길잡이, 편집물 등 우리 주변의 여러 부분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서는 2007년 영화감독 게리 허스트윗(Gary Hustwit)에 의해 다큐멘터리로 제작되기도 했다.(심지어 제목마저 <헬베티카>였다.)
영화 <헬베티카> 포스터 / 공식 홈페이지 (바로 가기)
헬베티카는, 사회주의 이념에 기반을 둔 러시아 구성주의(Constructivism)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형태적 원조는 독일의 ‘악치덴츠 그로테스크(Akzidenz Grotesk)’인데, 중립적인 디자인(디자인 자체로서 의미를 갖지 않는 형태)으로 객관적 해석 및 메시지 전달의 효율성에 중점을 둔 스위스 모던 타이포그래피 양식과 어울리게 된다. 그 결과 헬베티카는 간결미와 더불어 높은 가독성을 자랑하며 1960~1970년대를 대표하는 서체로 떠올랐다. 지금까지도 이 서체는 아메리칸 어페럴, 루프트한자 항공, JEEP, 3M 등 다양한 다국적기업의 CI로 널리 활용되고 있으며, 현재 가장 많이 팔려나가는 폰트이기도 하다.
아메리칸 어페럴 스토어 (바로 가기)
헬베티카와 닮은꼴인 에어리얼은 어떤 이력과 특징을 갖고 있을까? 이 서체는 1982년 모노타입(Monotype)사의 로빈 니콜라스(Robin Nicholas)와 패트리샤 사운더스(Patricia Saunders)에 의해 개발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운영체제로 작동하는 컴퓨터에는 에어리얼이 기본 탑재되어 있어 많은 이들에게 친숙한 서체이기도 하다.
에어리얼은 모노타입사의 그로테스크(Grotesque) 시리즈의 변형으로 시작되었고, 그 비례와 굵기는 헬베티카에 맞춰져 있다. 그래서 언뜻 봐서는 전문가들도 헬베티카와 에어리얼을 한번에 구분해내기가 쉽지 않다. 위키낱말사전(Wiktionary)은 에어리얼에 대해 “모노타입사가 디자인한 산세리프 타입페이스로, 헬베티카의 저렴한 대용 서체(A sans serif typeface designed by Monotype as a cheaper substitute for Helvetica.)”라고 정의하기도.(위키낱말사전 바로 가기)
쌍둥이가 제아무리 똑같이 생겼다 해도, 반드시 그 둘을 ‘남’으로 규정짓는 외형적 요소(몽고반점의 위치, 새끼발가락의 길이 등)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헬베티카와 에어리얼 역시 마찬가지다. 이 둘의 차이를 가장 분명히 드러내주는 자소는 대문자에서는 R, Q, G, 소문자로는 a, r, t, 그리고 숫자 1과 3이다. 크게 보면 에어리얼은 곡선적이고 특징이 더 살아 있는 반면, 헬베티카는 보다 정리되고 직선적인 느낌이다.(‘r’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이 같은 특징적 자소들만 확실히 알아둔다면, 헬베티카와 에어리얼이 함께 쓰였을 때 조금은 쉽게 구분해낼 수 있을 것이다.(물론, 폰트 디자이너들은 헬베티카의 미묘한 두께 감까지도 한번에 간파해내곤 한다.) 길을 걷다가, 혹은 책이나 잡지를 보다가 ‘헬베티카스러운’ 서체를 발견했다면, 에어리얼이 아닌지 한 번쯤 의심(?)해보는 건 어떨까.
▶ 참고: <좋은 디자인을 만드는 33가지 서체 이야기> 김현미 저, 세미콜론 (바로 가기)
▶ 참고: Mark Simonson Studio (바로 가기)
▶ 폰코(Font.co.kr)에서 헬베티카 내려받기: 바로 가기
▶ 윤디자인연구소와 파트너십 관계인 글로벌 폰트 회사 ‘모노타입’ 알아보기: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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