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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포그래피

깔깔 낄낄 크리에이티브 잼잼! 〈조경규 대백과〉



자신의 이름 석 자가 책 제목에 떡하니 들어간 이번 신간에 대해 조경규는 한껏 겸양한다. “4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이런 근사한 책을 만들게 된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값지고 귀한 기회 중 하나였다”라고. 그렇고 그런 자서전의 낯간지러운 머리글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변론을 약간 덧붙이자면, 지난해 11월 제10회 ‘더 티(The T) & 강쇼’ 세미나에서 목격한 연사 조경규는, 최소한 ‘체하는’ 부류는 결코 아니었다. “음식점 찌라시야말로 완벽한 디자인”, “굴림체는 폰트의 완성”이라고 진지하게 말하던 그였다. 어쩌면 이 사람은 ‘주류와 비주류’(일반성과 특수성)의 잣대가 아닌, ‘내가 좋아하는 것과 안 좋아하는 것’(개별성과 보편성)이라는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조경규 대백과〉(지콜론북, 2014)를 펼쳐 읽으니, 세미나 때 가졌던 생각이 과연 맞았나 보군, 하는 반가움이 든다. 그는 여는 글에서 프리랜서로서의 자신을 퍽 명확하게 정의해놓았다. “난, 밥은 늘 누군가와 먹지만 일은 혼자서 하는 걸 좋아한다”라고. 혼자 밥벌이를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밥을 먹는다. 다른 이들과 밥벌이를 하여 혼자 밥을 먹는다, 만큼이나 간명하다.

목차 구성 역시 명료하다. Part 1, Part 2, Part 3. 각 파트마다 인트로 카피를 써놓을 법도 한데 그런 것도 없다. 자신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들, 말하고 싶었던 것들을 세 번의 호흡으로 보여주고 말한다는 콘셉트일까. 그렇다고 전혀 계통이 없는 것도 아니다. 첫 번째 파트는 자신에게 유의미한 사람들에 대하여, 두 번째 파트는 그간의 작업들에 대하여, 세 번째 파트는 조경규 본인에 대하여 담았다. 제 입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게 영 쑥스러웠던 것일까. 마지막 파트 분량은 여섯 페이지 정도다. 그마저도 ‘내 인생의 기계’와 ‘내 인생의 책’이라 하여 ‘기계’와 ‘책’이라는 사물을 통해 에둘러서 자기 자신을 보여주고 있다. 자아도취 판타지 같은 것이라고는 없는 말끔한 목차. 기름기 쏙 뺀 만큼, 독자 마음에 쏘-옥.






프리랜스 디자이너로, 일러스트레이터로, 만화가로 활동하며 작업한 방대한 결과물들을 차곡차곡 담아놓았기에 글 양이 그리 많지는 않다. 딱히 기억에 남을 만한 명문도 없다. 그저 투박한 문장으로 해야 할 말, 하고 싶은 말들만 딱 해놓고 끝마쳤다는 느낌이다. 이런 점이 이 책을 볼 만하게 만든다. 나는 말로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작업으로 말하는 사람이다, 라는 자기 인식이 또렷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조경규 대백과〉는 목차부터 본문 구성까지 전체적으로 단순하게 전개되지만, 그만큼 구차함이 없다. 작품에 대한 ‘해설’이 아니라 ‘느낌’과 ‘제작 과정 에피소드’ 중심으로 풀어낸 글줄 또한 독자들과의 소통 지점이다. 가령, 프리랜서로서 첫 유료 작업이라는 〈하나은행〉 계간지 일러스트에 대해 조경규는 “이것이 바로 내가 돈을 받고 그려준 그림 1호”라며 “좀 괴상하긴 하지만, 지금 봐도 결코 나쁘진 않다”라고 자평한다. 해설이라든지 해석 같은 것은 내 몫이 아니며 나는 어쨌든 내 작품이 참 좋다, 라는 경쾌한 사고방식을 지닌 사나이인 걸까. 조경규의 귀여운 ‘자뻑’은 거부감 없이 독자들을 낄낄거리게 만든다.





한 장 한 장 넘기는 동안 쿡쿡대게도 되고, 깔깔거리게도 되고, 푸하하 폭소하게도 되는 책 〈조경규 대백과〉. 마흔 넘은 프리랜스 디자이너가 알려주는 창작 노하우란 거창하지 않다. 즐거워야 한다, 내가 나를 좋아해주어야 한다, 그래서 또 즐거워야 한다. 여기에 한 가지 더한다면, 클라이언트잡에서는 “언제나 ‘고객 맞춤’”을 추구한다는 점 정도. 쓸데없이 매사에 진지해져버린 자신을 발견했을 때, 모두가 외면하는 내 작업물을 나조차도 예뻐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래서 좀 즐거워졌으면 좋겠다고 느낄 때, 〈조경규 대백과〉는 유익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 제10회 ‘더 티(The T) & 강쇼’ 세미나 조경규 편 후기(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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